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3세 (문단 편집) === 왕위에 오른 뒤 === 1760년 할아버지인 [[조지 2세]]가 사망하자 2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독일 태생인 [[조지 1세]], [[조지 2세]], 아버지 웨일스 공 프레데릭과 달리 독일 억양이 없는 [[영어]]를 구사했는데, 이런 배경 때문에 조지 3세는 조지 1세나 조지 2세와 다르게 영국 내정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개입이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이원복]] 교수가 집필한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 따르면 '조지 3세'는 [[멍부|부지런했지만 머리가 좋지 않아 '''사고 확률 100%''' 였던 인물]]이라고... 그래도 애국심 하나는 충만했다 한다. 예를 들어 [[7년전쟁]] 막바지에 [[윌리엄 피트(1708)|대(大) 윌리엄 피트]]를 해임하는 삽질을 저지르다 전쟁을 망칠 뻔했다. 대 피트는 유럽 지상전에서는 국왕의 고향이자 [[동군연합]] [[하노버 왕국|하노버 선제후령]] 보호는 잘 싸우는 동맹인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맡기고, 영국은 인도와 아메리카 등지의 식민지 전쟁에서 프랑스만 제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할아버지 [[조지 2세]]한테도 좋지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피트에게 임명장을 줄 때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전해진다.] 이번엔 한술 더 떠 왕조의 뿌리인 [[하노버]]에 대해서 하노버 보호는 '''국왕의 이익이지 영국 국익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조지 3세가 회까닥해서 해임해 버린 것. 쉽게 말해 국왕 고향이 위협받고 있는데 '당신 영국 국왕이니 거기 신경 끄고 여기에만 집중하세요'라고 한 셈이다. 물론 영국인 입장에서 보면, 피트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고 오히려 전략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하노버는 동군 연합일 뿐, 영국 국민들이나 관료들 입장에서는 그냥 생판 다른 나라 땅인데 같은 군주를 모신다는 이유만으로 도와주는 건 군주만 좋은 거고 영국 입장에서는 안 좋은 게 맞다. '''다만 '폐하 [[본관]] 일이지 [[알빠노|우리가 알 바입니까?]]' 식으로 싸가지 없게 말해서 잘린 거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닌데 처신을 잘못해서 잘린 것. 그 여파로 영국의 내각이 교체되자 '''[[프로이센]]에 재정 지원을 끊고''' 영국이 직접 유럽 지상전에 직접 개입을 하는데, 그 결과 그동안 유럽전에서 잘 싸워왔던 [[프로이센]]은 자금난으로 병력이 15만에서 6만으로 줄어들어 버리게 된다. 참고로, 이 시대엔 군인의 대다수가 용병이었으며, [[프로이센]] 군대의 70%는 외국인이었다. 그 여파로 유럽전에서 한발 뺐던 [[프랑스]]가 [[하노버 왕국|하노버]]로 쳐들어 가는 [[병크]]가 터져버렸으며, 유일한 동맹국 프로이센은 [[러시아 제국]]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가 죽기 전 거의 패망 직전까지 몰렸다. 심지어 이 당시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는 동맹국의 수장인데다가, 공동의 적국이었던 프랑스를 격파해서 좀 지능이 떨어지는 '조지 3세'에 비해 영국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기에 자국 국민들에게까지 비난을 받았다. 허나 이미 몇 년 간 식민지에선 압승을 거둬왔고, 유럽 전역도 갑작스런 [[표트르 3세]]의 바보짓으로 쉽게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메데타시 메데타시|뻘짓에도 불구하고 승전은 할 수 있었다]]. 한편, 영국의 뒷통수에 원한을 품은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는 [[미국 독립전쟁]] 때 '무장중립동맹'을 선포, 미국 독립군 측에 독일인 교관과 용병을 보내버렸다고. 결과적으로 무장중립동맹은 미국의 동맹국인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통상의 자유' 드립을 치며 아메리카에 군수품을 계속 지원해서 영국군이 지는데 한몫 거든다. 이후 [[애덤 스미스]]의 학설을 도입해 자유무역 등을 이끌고 [[수상]]직 도입 이후 근 50년간 정치적 실권을 쥐고 있던 [[휘그당]]과 대립하면서 새로 올라온 [[토리당]] 중심으로 정치 지형을 바꾼다.[* 조지 3세의 아버지 [[프레더릭 루이]]도 조지 2세에 반대하던 토리당과 어울리다 아버지한테 찍히기도 했다. 다만 루이 시절 토리당과 조지 3세 시절 토리당은 지금 와서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 것일뿐 성향은 꽤 다르긴 하다.] 이것도 내면을 보면 좀 복잡하긴 한데, 자세한건 [[윌리엄 피트(1759)|소(小) 윌리엄 피트]] 항목 참조. 산업적으론 조지 3세 재임 기간 영국 내에서 [[산업혁명]]의 기틀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